top of page

학년도 다르고 층도 다른, 그 교실 앞을 지나가게 된 건 단언컨대 우연이었다. 학생회실에 가는 길목이 단지 그쪽이라는 순전한 우연. 학생회실은 2학년 교실보다 두 층이나 더 위에 있고, 굳이 그 길을 통하지 않아도 학생회실에 당도할 수 있는 방법은 수많지만, 굳이 그 교실 앞을 통해서 간 건…

역시 우연이라기 보단 습관의 탓이 컸다. 부학생회장이라는 위치는 수업 도중에 학생회실로 불려갈 일이 많았고, 유토는 늘 그 교실이 있는 쪽으로만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 교실은 쿠죠 텐이 수업을 듣는 교실이니까.

부활동도 없는 날이고, 학생들은 전부 하교했을 시간인데 텐이 그 교실에 있을 리가. 부학생회장으로서 할 일이 남아 하교하는 무리에 끼지 못한 저와는 다르게 텐은 이미 하교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비가 이렇게나 내리는데 우산은 가져왔을까? 사정이 어떻든 이 시간이면 이미 집이겠지….

 

그러나 습관대로 교실 안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시야에 들어온 건, 책상에 엎드린 채로 눈을 감은 텐의 모습이었다.

 

*

 

창밖에선 비가 내려서 그런지 잔뜩 어두운 하늘이 보이고, 서늘한 공기가 틈새로 들어오는데 창을 등지고 엎드려 있는 텐의 얼굴은 그늘져있으면서도 표정은 평온했다. 평소엔 똑부러지고 꼿꼿하게 힘이 들어간 모습만 보던 탓에 이렇게 무방비한 모습이 새로웠다.

아무도 깨워주지 않은 건지, 혹은 학교가 끝난 후에 자기 시작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텐은 지금 잠들어 있다는 사실 하나였다. 깨우러 들어온 유토가 차마 그 잔뜩 웅크린 소동물 같은 모습에 깨우지도 못하고 살짝 옆자리의 의자를 빼 앉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깊이.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배경으로 삼아 유토는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텐의 어깨를, 고요한 표정을, 가볍게 닫힌 두 눈을, 살짝 벌어진 입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조용하게, 오랫동안. 소리도 없이 마냥 존재하는 안개처럼 내리는 부슬비는 끊임이 없었다. 복도에는 근처를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없었고, 아무도 유토를 찾지 않았으며 텐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게 조용했고 그건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일게 했다.

영원 같은 찰나를 지나, 턱을 괸 팔이 저릿해질 즈음엔 이미 시곗바늘이 꽤나 움직인 후였다. 이제 와서 이렇게나 풀어진 텐의 모습을 보는 게 꼭 텐의 이면을 몰래 훔쳐본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키스해도 돼?”

순전한 욕심으로.

 

자는 줄만 알았던 상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당연히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내뱉은 말이 혼잣말에 불과했다는 건 무시한 채로 텐을 향해 고개를 숙였던 유토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술을 뗐다. 입술에 남은 타인의 온도가 곧 사라질 것 같아 유토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텐은 여전히 그 자세로, 다만 눈을 뜨고 그런 유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잘 잤어?”

그 시선에 머쓱해질 때가 돼서야 유토는 손을 내리고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잠이 완전히 깬 건 아닌지, 여전히 부스스한 모습의 텐이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귓가에 쿵쿵거리는 심장소리가 울렸다. 날씨가 이렇게 찬데 속에선 뜨거운 게 끓어오르는 느낌이 드는 게 이상했다. 넌 정말 아무렇지도 않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해말간 텐을 보며 유토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그렇게 묻는다면 분명 이렇게 대답하겠지. 선배도 마찬가지네요, 라고. 왜냐하면 이건 어느 비 오는 날의 작은 사건일 뿐이니까.

다만 무색하게 텐의 심장도 이렇게 세차게 뛰길 바랄 뿐이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