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개성 없이 똑같이 입었던 교복을 벗어던지고 품고 있던 각자만의 재능을 피워내기 위한 문턱에 서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날.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처음이라는 설렘에 교실은 어느 때보다 왁자지껄했다. 줄어들 생각 없이 점점 커지는 소음에 책을 읽던 리바이의 얇은 눈썹이 모아졌고 그 앞자리에서 엎드려 잠을 청하고 있던 아달리가 뒤척인다.

 

“어이, 이제 그만 일어나.”

“···몇 시야.”

“네 놈 눈으로 직접 확인해라.”

 

아달리는 베고 잤던 팔을 쭉 피며 몸도 일으켰다. 그리고 길게 하품을 하는데 리바이는 그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요 근래 아달리의 태도는 불성실했다. 학기 중에도 그리 성실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학기 말이 되니 책상에 엎드려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학교가 끝나면 자신의 짐을 챙겨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체 무엇을 하고 다니는 것인지. 그의 말로는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지만, 제 진로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주변에 휩쓸려 시간을 쓰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던 리바이였기에 영 탐탁지 않아했다. 그래서 지금도 제대로 깨지 못한 잠에 취해있는 분홍색 뒤통수에 대고 한심하다는 말로 한 번, 아니, 여러 번 후려주고 싶었다.

 

“오늘도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 오늘은 쉬어. 갑자기 일정이 바뀌었거든.”

 

새싹이 자라나고 겨울을 참아낸 망울들이 하나 둘 피어나는 봄의 내음이 따스한 바람을 타고 날아오고 있었지만 늘 춥다고 말하는 입버릇을 가지고 있는 아달리였다. 그랬기에 아달리는 책상에 걸려있는 가방보다 의자에 걸어두었던 마이를 먼저 들어 몸에 걸쳤다. 탁탁. 빳빳한 재질의 모양을 바로 잡으니 아주 잘 보이는 단추의 공백.

 

“쯧.”

“···뭔데 또.”

“제 옷에 문제가 생긴 것도 모르고 다니나.”

 

리바이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에 아달리의 시선도 함께 머물렀다. 두 번째 단추. 잃어버려도 꼭 저와 같은 애매하고도 신경 쓰이는 위치의 단추를 잃어버린 것에 리바이는 혀를 찼다.

 

“···아. 이거? 어제는 옷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서 교복입고 일하다가 떨어졌어.”

“그리 서둘러 가더니 결국에는 늦었군.”

 

잔소리와 함께 아달리의 앞에 손이 내밀어졌다. 옷을 수선해줄 모양인지 얼른 달라고 재촉하는 리바이에 아달리는 잠시 고민했다. 환기 때문에 열어둔 창 너머에서 불어오는 따뜻하지만 물러가지 못한 계절의 끝자락이 섞인 바람. 그 조용한 차가움에 살짝 몸을 떨고 나니 옷을 더 여미게 되었다.

 

“오늘은 집으로 바로 가니까 집 앞에서 줄게. 아직 바람이 쌀쌀하잖아.”

“······그렇게 하지.”

 

벌써 3월의 끝자락을 보고 있는 온화한 계절. 일교차가 심하긴 해도 저리 꽁꽁 싸매고 다닐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지만 당사자가 그리 느끼고 결과적으로는 제가 아달리의 옷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리바이는 더 말을 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같이 하교 하네.”

“네 놈이 늘 일을 하러 가니 그렇지. 보수는 제대로 받고 하는 건가.”

“그럼~ 제 때 꼬박꼬박 잘 받으면서 일하고 있지. 내가 뭐 그런 것도 말 못하고 있을까봐?”

“말을 못하고 있기보다는 쓸데없이 입을 놀려 감봉 받는 쪽이 되지 않나 싶은 쪽이다.”

 

익숙한 골목을 익숙한 관계로 걷지만 이상하게 새로웠다. 첫 숨을 내뱉었을 때부터 늘 붙어있던 사이로, 서로에 대한 것들은 웬만큼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몸이 자라고 머리가 크며 각자가 가고자 하는 길목이 달라졌고 거기에서 오는 일상의 공백을 넌지시, 하지만 조심스럽게 물어서 일까. 먼저 질문을 했던 리바이는 물론 답을 해주던 아달리도 미미하게 느껴지는 어색함을 알아챘다.

 

“별일 없으니까 걱정 마.”

“걱정으로 들리나.”

“···그럼? 또 잔소리야?”

“좋을 대로 생각해라. 마침 집 앞에 도착했으니 시간은 여유롭겠지.”

 

상황을 모면하고자 했던 말은 다행스럽게도 잘 맞아떨어졌고 아달리는 가볍게 제 마이를 벗어 리바이에게 건넸다. 그리고 이때다 싶어 내려앉는 서늘함이 어깨에 눌러 붙지 않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때문에 등 뒤에 퍼지던 말을 듣지 못했다. 전했지만 닿지 않은 용건에 리바이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저 역시도 아달리가 사라진 집 바로 옆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방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톡톡, 받아야만 하는 할 말을 눌렀다.

 

[여분의 단추]

[혹시 가지고 있나.]

 

적당히 늘어지려고 방 침대에 몸을 눕히는 순간 울리는 핸드폰. 아달리는 서지도 눕지도 않은 어정쩡한 몸을 다시 폈다. 그리고 확인을 해달라 반짝거리는 연락을 보니 아차, 싶은 말들이 읽혔다.

 

“아, 단추······.”

 

집으로 걸어갈 때만 해도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마이를 벗자마자 셔츠 사이로 숭숭 들어오는 찬바람에 깜빡했다. 여분의 단추가 마이 안에 있던가··· 기억을 되짚지만 도움 될 만한 것들은 떠오르지 않는다. 없으면 어쩌지. 아달리는 언젠가 챙겨서 넣어두었을 만한 제 방 서랍을 뒤적였다. 조금은 정리되지 않은 서랍 속에서는 데구르르 각종 잡동사니들이 뒤섞였지만 찾고 있는 단추는 보이지 않았다.

 

“어딨는 거야······.”

 

방 구석구석을 열어보고 뒤집고 좁은 틈까지 손을 뻗어 확인했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졸업식에 단정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을 계획이 점점 물거품으로 변하고 있는 중, 짧게 알림음이 울린다.

 

[마이 안쪽에 여분의 단추가 없더군.]

[찾게 된다면 연락해라.]

 

이 상황을 뻔히 알고 있다는 내용들에 아달리는 부러 모르는 척 핸드폰을 밀어두고 다시 단추 찾기에 집중했다. 같은 곳을 몇 번이고 뒤엎고 둔탁한 소리를 내다보니 방은 금방 어지럽혀졌다. 이 사이에서 무언가를, 그것도 크기가 크지 않은 물건 하나를 찾기에는 어려운 일.

 

“다시 차분하게 생각을 해볼까······.”

 

마침 목도 말랐기에 아달리는 부엌으로 향했다. 냉수라도 마시며 천천히 떠올렸던 기억을 곱씹던 중 보인 반짇고리. 혹시나 싶은 마음에 열었던 상자에는 그토록 찾던 단추가 있었으며 아달리는 물을 마시다 말고 방으로 돌아와 답을 해주지 못한 연락에 답을 꾹꾹 누른다.

 

[지금 가지고 갈게]

 

시간이 촉박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빨리 전해주고 싶었다. 그랬기에 겉옷을 챙길 틈도 없이 대충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고 겨우 30초가 걸릴까 말까한 거리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 급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급한 건 아니지만 빨리 가져다줄수록 좋잖아.”

“그렇긴 하다만··· 그 한 가지의 생각에 다음 연락을 보지 않고 왔나보군.”

“어? 뭐 보냈어?”

 

아달리는 아직 갈아입지 못한 치마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미확인으로 떠있는 대화방을 연다.

 

“···단추는 알아서 달았···다······.”

“알았으면 그만 돌아가는 게 어떤가. 추위도 많이 타는 놈을 감기에 걸려서 돌려보내는 취미 없어.”

 

아달리는 매정하게 닫히려는 현관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리고 손에 쥔 단추의 매끈한 면과 우둘투둘한 면을 번갈아 매만지며 고민했다. 그래도 줄까. 아니면 이후 똑같은 일을 대비해 가지고 있을까.

 

“뭐··· 가지고 있기가 어렵다면 졸업식, 그 날에 준다면 새로 달아주겠다.”

“···너 그 말 무슨 뜻인지 알고나 말하는 거야?”

“지금 네 놈이 가지고 있는 단추는 두 번째 단추가 아니잖나.”

“그렇지만 졸업식에···”

“말이 많군. 정말 감기에 들고 싶은 건가.”

 

말을 돌리는 것이 영 어색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달리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저 지금처럼, 함께 공유하던 시간이 오래될수록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서투른 표현이 리바이답다는 생각을 할 뿐.

 

“졸업식에 마스크를 끼고 사진을 찍을 순 없지. 그리고 겸사겸사 누가 너한테 단추를 주는지, 누가 너한테 단추를 받는지, 다들 알아야 할 거 아니야.”

“···빌려 줬던 물건을 돌려받는 것뿐이다.”

“그거나 그거나~”

 

리바이는 더 이상 말을 얹어도 제게 득이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어서 돌아가라는 의미로 손만 휘저었다. 아달리는 그 손길에 못 이기는 척 제 집으로 걸음을 옮겼고 제 손에 있는 단추를 꼭 쥐었다.

 

분명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게 형체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다양한 의미가 담겼다. 매일매일 들여다볼 때마다 섞인 단어들의 무게는 달라졌고 그 탓에 아달리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정성 때문일까. 학업을 종료하고 새로운 진로를 찾아 떠나는 결승선이자 출발점에 선 그 날까지 단추에는 그 날의 여전히 또렷하지 못한 응어리들이 깊게 베여있었다.

 

“리바이!”

“···늦었군.”

“단추 없이 사진 찍기 그렇잖아~”

 

평소와 달리 실없는 말로 공백을 메꾸는 이유는 서로가 안다. 그랬기에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치고 온전히 그 시선 속에 담기는 순간 진심이 흐른다.

 

“단추, 받아가도록 하지.”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봄을 타고 보드랍게 닿는다. 벚꽃이 흩날리던 운동장 작은 그늘 아래. 그곳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진 복잡하고도 미묘한 박동이 고인 단추 두 개는 각자의 주인에게 익숙하지만 속에는 새로운 의미를 담은 채 심장 가까이 자리한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