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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긴 시간도 아니지만, 이 한 달이 매우 짧게 느끼는 이가 있었으니, 카모메 학원 고등부 1학년 유기 아마네다.

 

 

“앗, 유기, 네가 이번에 내 짝인 거야? 잘 부탁해!”

 

 

안즈가 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아마네를 보고서 눈을 곱게 접어 올렸다. 자리 바꾸기가 한창이라 어수선함에도 불구하고 아마네는 다른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오직 안즈의 목소리만이 또렷하게 들려서 넋 놓고 그녀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응, 잘 부탁해.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자리에 앉아서 주변 정리를 하는 안즈를 곁눈질로 바라보던 아마네는 한창 짝사랑하기 바쁜 소년이었다.

 

자리를 바꾸는 주기는 한 달 간격. 이 한 달은 아마네가 안즈와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러니 짧다고 느껴질 수밖에. 주말을 제외하면 약 20일이니까. 그 20일 동안 아마네는 안즈를 이름으로 부르기까지 성공하자고 다짐했다.

실제로는 몇 cm가 떨어진 안즈와 아마네의 자리였지만 친밀한 거리만큼은 몇M나 되는 것 같았다.

언제 말을 걸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자니 안즈는 어느새 책을 꺼내 들어 읽고 있었다. 다음 쉬는 시간을 노리자고 생각한 찰나에 뒷좌석에서 안즈의 어깨를 톡톡 건드려오는 클래스 메이트 야마부키 군.

 

 

“이노우에! 들어봐.”

 

 

로 시작해서 한참을 조잘조잘. 안즈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에 살짝 분함을 느낀 아마네는 자기도 용기 내어서 말을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참에 야마부키와 안즈와의 대화가 끝난 듯 했다. 급한 나머지 무얼 말하면 좋을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아마네는 덜컥 안즈를 불렀다.

 

 

“저, 이노우에….”

 

“응?”

 

“아…. 그, 저, ……아무것도, 아니야.”

 

 

말을 걸어놓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다니. 분명 자신을 바보 같다고 생각하리라 짐작한 아마네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안즈는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다 이내 작게 웃고는 아마네에게 물었다.

 

 

“유기, 도넛 좋아하지? 다다음주에 새로운 도넛 가게 오픈이라는데 그날 방과 후에 같이 먹으러 갈래?”

 

 

그 질문에 아마네는 재빠르게 안즈를 다시 쳐다보고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런 아마네를 안즈는 빤히 바라보다 다시 살풋 웃었다.

 

 

“그러면 약속한 거다?”

 

“응!”

 

 

이게 웬 행운이냐!! 아마네는 속으로 크게 외치며 안즈와 짝이 된 것이 자신이라서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짝이었다면 분명 안즈는 그 친구에게 권유를 했을 테니까.

그로부터 아마네는 열심히 노력하기로 했다. 우선 방과 후에 도넛을 먹으러 가기 전까지 서로를 이름으로 부를 수 있도록. 그리고 자리를 바꾸기 전까지 무척 친해질 수 있도록. 일단 그거면 충분했다.

결과는 좋았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더라고 모르는 척 안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말장난도 하며 거리를 줄여나갔다. 그래서 그런 걸까, 안즈 또한 아마네에게 과학을 가르쳐 달라며 수줍게 웃으며 물었고, 아마네는 기뻐하며 승낙했다.

아마네의 예상보다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시기는 금방 찾아왔다.

 

그런 시기도 금세, 어느덧 약속 당일.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과 후 데이트가 기다리고 있는 날이었으나 한참을 고민인 중인 아마네였다. 드물게 축구를 하지 않고 운동장 끄트머리 벤치에 앉아 축구하는 아이들을 바라고 보고 있었다. 이윽고 땅이 꺼져라 푸욱 한숨을 쉬고 있자니 중등부 선생님인 츠치고모리가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이냐.”

 

 

라는 질문에 아마네는 대답하고 싶지 않은 듯 입을 꾸욱 다물고 있다가 인내심 있게 기다려준 선생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연애 상담도 해줘요?”

 

 

눈을 끔벅거리며 아마네를 바라보는 츠치고모리를 보며 아마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선생님에게서 눈을 돌렸다.

 

 

“진로 고민인 줄 알았나 봐요?”

 

“응. 뭐.”

 

“….”

 

“….”

 

 

한참의 정적을 먼저 깬 것은 츠치고모리였다.

 

 

“인생에는 많은 선택이 있잖냐. 그렇지? 크게 봐서는 진로. 작게 봐서는 아침 빵을 먹을지 밥을 먹을지 고민하는 정도겠네. 그거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해? 도덕이나 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뭘 어찌하든 네 선택이고. 네 선택이니만큼 후회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봐. 후회할 것 같으면 시도를 하지 않으면 되는 거고.”

 

“그렇네요. 뭐 딱히 거창한 선택은 아니지만요.”

 

 

아마네는 단지 오늘 혹시라도 부끄러운 실수를 할까 봐서 걱정이었다. 고백을 하기엔 너무나도 이르니까. 자신은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기에, 쉽게 사랑이 풀릴 일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이미 한참 전에 약속한 일이다. 실수만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선생님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방과 후를 기다리는 아마네였다. 그런 아마네와 달리 안즈는 기분이 조금 붕 떠 있었다.

 

 

“안 쨩, 기분 좋아 보여!”

 

“어라, …그래?”

 

“정말로. 안즈 오늘 무슨 좋은 일 있었어?”

 

 

흥얼거리며 텃밭이 물을 주고 있는 안즈의 곁으로 네네와 아오이를 비롯한 원예부원들이 몰려와 질문했다.

 

 

“으음, 좋다면… 좋으려나?”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어색하게 웃는 것이 되려 티가 낫는지 아오이가 가볍게 손뼉을 짝, 치고는 데이트냐고 물었고, 안즈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나름대로 방과 후를 기다리는 이들이었다.

 

  

 

“도넛 맛있었지!”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가벼운 종소리와 함께 한 가게에서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린 틈새로 또 오세요. 라는 명랑한 외침을 뒤로 한 채 아마네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웃어 보이며 안즈에게 도넛의 맛을 물었다. 그 웃음을 보고 안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네, 애 같아. 입가에 부스러기 묻었어!!”

 

 

이윽고 키득키득 웃으며 이어지는 안즈의 말에 아마네가 좋아하는 아이 앞에서 덤벙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싶어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아마네의 얼굴에 안즈가 손을 뻗어 도넛 부스러기를 털어내었다.

가까워진 거리에 아마네는 한층 더 얼굴을 붉혔고 안즈 또한 귀까지 빨갛게 익어버렸다.

서로 그런 표정을 보자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에게서 급하게 떨어졌다.

 

 

“지, 집에 갈까?”

 

“으, 응. 그러자.”

 

 

한참을 멈추어 서 있던 거리에서 발걸음을 내디뎠다. 방금 전일이 어색한지 잊으려는 듯 아마네는 쓸데없이 가방을 뒤적거렸고, 안즈는 연락하나 오지 않는 라인 창의 스크롤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딴청을 피우며 걸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옆으로 가면 닿을락 말락 한 거리를 유지하며(아마도 저들도 모르게 그렇게 걸었음이 분명하리라) 그렇게 그들의 맞짝사랑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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