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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기 하나미치.

쇼호쿠 고교의 천재 바스켓맨.

사쿠라기 하나미치!

그야말로 천재. 그 루카와도 막을 수 없는 천재!

 

“-사쿠라기 하나미치!!!”

 

고성이 귓가를 때리고 나서야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엎드려 자던 책상에서 슬슬 일어났다. 잠기가 한가득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사쿠라기의 눈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선생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머쓱하게 머리를 긁은 그는 죄송하다는 의미를 담아 가볍게 웃어보였지만, 그것을 보는 선생님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더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것에 사쿠라기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결과는 끝나고 교무실에 불려가 한바탕 잔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잔소리를 한참 듣고 나서 풀려날 즈음,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묘하게 낯이 익은 여학생과 마주쳤다. 갈색 단발머리에, 어딘지 모르게 체구 작은 범을 연상시키는 아이였다. 문을 가로막고 선 채 길을 비켜주는 것도 잊고 그녀를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사쿠라기를 향해 그 갈색 눈동자가 찌르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너, 지금 내 길 막고 서 있어. 비켜.”

 

돌려말하는 것 없이 내질러진 말이었다.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한켠으로 비켜섰다. 시선이 멍하게 그녀를 따라붙었다. 어디에서 보았더라. 분명히 낯이 익은데 떠오르지 않으니 묘한 일이다.

 

“키하라 나츠키. 교무실에는 제대로 교복을 입고 오라고 말했을 텐데. 그거 유니폼이지?”

“아, 한번만 봐주세요. 저 바로 연습하러 나가야 한단 말이예요.”

 

사쿠라기는 그제야 그녀가 교복 상의 아래에 반바지를 입고 있음을 알았다. 반바지야 그 역시 경기 중에 곧잘 입는 것이지만, 그녀가 입은 것은 당연히 남자 농구부의 것과는 달랐다. 운동하는 애일까. 사쿠라기는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문 앞에 서 있었다. 그 덕분에 키하라가 다시 교무실에서 나올 때 다시 마주쳤지만 말이다. 키하라는 제가 들어올 때 문을 막고 서 있던 애가 아직까지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곤 눈썹을 슥 치켜올렸다.

 

“너 여기서 벌 서고 있어?”

“어? 어? 나 말하는 거야?”

“그럼 여기 교무실 문 옆에서 얼쩡거리는게 너 말고 더 있어?”

“...아. 으흠, 그게…. 난 사쿠라기 하나미치라고 하는데, 너, 나 어디서 본 적 없어?”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농구부에 들어가며 조금은 성격이 유해졌으며, 이건 이전부터 그랬지만, 여학생에게는 유독 더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조금은 날카롭게 튀어나간 키하라 나츠키의 질문에도 조심스레 답변을 했으리라. 키하라는 사쿠라기의 질문에 의아하다는 듯 솜씨 좋게 오른 눈썹만을 치켜세웠다.

 

“네가 사쿠라기 하나미치라는 건 알아. 너 유명하잖아? 농구부의 망나니라고.”

“망나니... 천재 바스켓맨으로 유명하겠지!”

“사쿠라기 하나미치! 아직도 교무실 앞에서 뭐 하냐! 키하라 너도 시끄럽게 하면 벌 세울 거다!”

 

교무실 안에서 터져나온 고성에 둘은 움찔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천재 바스켓맨이라는 건 모르겠지만. 너는 알고 있어. 나도 운동부고. 네 덕분에 운동부 전체가 언제 비뚤어질지 모른다고 요주의 대상이 된 건 알고 있냐?”

“운동부... 그러고 보니까 너도 선수야? 매니저가 아니고?”

“남자애들은 죄다 그 소리 하더라. 매니저 아니냐고.”

 

키하라는 콧방귀를 가볍게 뀌었다.

 

“여자 축구부 에이스다! 등번호는 10번! 내가 선수인 걸 모르는 걸 보니 경기를 보러 오기는커녕, 학교에 여자 축구부가 있는지도 몰랐구만.”

“으, 음...”

 

사쿠라기는 시선을 슬쩍 돌렸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하루코가 농구부 입부를 권유하지 않았으면 농구에 대해서도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키하라는 무언가 떠올렸는지 씨익, 입꼬리를 말아올려 짓궂게 웃어보였다.

 

“너, 아직도 나 어디서 봤는지 못 떠올렸지?”

“어? 역시 어디서 본 거지?”

“글쎄, 다음 경기가 마침 내일이거든. 내일 와서 날 응원하면 그 다음에 알려줄게!”

 

키하라는 짓궂은 미소를 띄운 채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축구장으로 달려가버렸다. 사쿠라기는 그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  *  *

 

사쿠라기는 결국 다음날의 경기를 보러 갔다. 막아서는 상대편을 물 흐르듯이, 바람 불 듯이 제끼며 달리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하지만 결국 키하라는 그들이 어디에서 마주쳤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사쿠라기는 투덜거리며, 이제는 일상이 된 저녁 로드워크를 하고 있었다.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거리를 뛰니, 거리가 익숙하다. 매일 같이 같은 시간에 거리에 누워있는 고양이라거나, 저녁 장사 준비를 하는 가게나, 역시 운동부인지 같은 시간에 로드워크하며 지나치는 학생들. 뛰다 보면 역시 익숙한 모습이 보인다. 이어폰을 낀 채 건너편 길을 뛰는 사람이 있다. 사쿠라기도 그 사람도 늘 정면만 보며 뛰니 서로를 볼 일은 없다. 그저 아, 저 사람도 로드워크 중이구나. 하는 정도다.

 

“야, 사쿠라기 하나미치!”

 

그 때 길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사쿠라기가 고개를 돌리면, 키하라 나츠키가 짓궂은 낯을 하곤 혀를 쏙 내밀고 있었다. 사쿠라기가 놀라 입을 떡 벌리는 동안, 키하라는 듣기 좋은 웃음을 한바탕 쏟아내곤 다시 길을 뛰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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