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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센 시즈카는 귀찮았다. 도대체 이놈의 학교는 무슨 게임처럼 아이돌 육성을 목표로 하는 건지, 혹은 프로듀서 육성을 목표로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매번 이렇게 귀찮은 일을 만들어내었다. 옆반의 아카네 역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신은 아카네처럼 성실한 성격이 못 되었다. 애시당초 운동부의 훈련 커리큘럼을 짜는 것만으로도 귀찮아 죽겠는데, 커리큘럼을 짜주면 매니저로 직접 부르는 횟수를 달에 1회로 줄여줌과 동시에, 월별로 그에 합당한 금액을 지급하겠다는 운동부 부장들의 말에 아르바이트 겸 해서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에게 굳이 세이란 학원까지 가서 차후 진행할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고 오라니. 이센 시즈카는 이럴 때는 한번 맡은 일이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제 성격이 원망스러웠다. 하나 더 원망스러운 것은, 이런 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회장과 쿠로기리 선배였다. 지금 그만 하고 싶다고 하면, 분명히 제가 그만둔 프로그램이 어떻게 좌초할지 줄줄이 늘어놓겠지. 이미 몇 번이나 경험한 일이니 눈에 훤했다.

사립 세이란 학원은 여러모로 사립 후지시로 학원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그 새하얀 제복같은 교복이 뭔가 전문적이고 딱딱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런 교복을 입는다고 모든 사람이 딱딱한 인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아-, 이거 후지시로의 땅꼬마 아니야.”

“땅꼬마 아니라고!”

 

그 능글맞은 말에 저도 모르게 성을 내고 만다. 그래. 예를 들면 바로 이 남자. Werewolf랬나, 어쨌든 뭐시기 밴드의 기타리스트다. 애시당초 실제 공연을 하고 있는 사람이 일반 학생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되냐고-물론 이쪽에도 Vanitas가 있긴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런 능글거리는 사람이 정말 맞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 자신은 꺼려하고 있었다. 정신차려보면 그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게 되는 게 일쑤니까 말이다.

 

사에바 신은 능글능글 웃었다. 눈 앞에 있는 이 자그마한 소녀-사에바 신은 그녀가 아주 작은 소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와 그녀는 고작 한 살 차이가 날 뿐이었다-는 놀려먹는 재미가 있었다. 후지시로와 세이란이 함께 진행하는 온갖 행사의 매니저로는 그녀 혹은 아카네라는 다른 학생이 오곤 했는데, 아카네 쪽은 좋게 말하자면 심성이 순하고 고와서 놀려먹는 맛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진저리치며 학생회장실로 반쯤 뛰어가는 이센 시즈카를 다시 따라잡았다.

 

“어차피 먼저 가도 날 기다려야 할걸, 너. 이번 프로그램에 세이란 쪽에서는 내가 나가거든.”

“... ... 바꿔달라고 해야지.”

“바꿔 줄 상대가 있을 거 같냐?”

 

아. 이센 시즈카는 미간을 감싸쥐었다. 그래. 이 남자가 순순히 제 말을 들어줄 리가 없지. 대체 뭐가 문제야, 그녀는 결국 뒤를 돌아 자신보다 훨씬 큰 그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그가 쫄거나 할 리가 없지. 오히려 능글능글 웃어 성질만 더욱 날 뿐이었다. 이러느니 차라리 제가 연극을 한다고 할 걸. 이미 늦은 후회였다. 이센은 다시 뒤돌아 학생회장실로 줄달음질쳤다. 그 뒤를 느긋하게 쫓는 사에바는 연신 키득키득대며 웃었다. 아, 역시 재미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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